스트레스 만땅인 날에는 엽기떡볶이 기호식품

매운 것을 좋아하기는 하지만 잘 먹지 못하는 편이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정말정말 스트레스가 머리꼭지까지 올라오는 날에는 목구멍이 얼얼해질 정도로 매운 음식이 땡기곤 한다.
맛있지만 다소 느끼한 피자를 저녁으로 먹은 날 새벽에 뜬금없이 동생이 방으로 찾아와 '엽기떡볶이'를 시켜먹자고 하였다.
그.러.나... 집에서 가장 가까운 지점은 이미 영업시간이 지나있어서 어쩔 수 없이 차키를 가지고(...) 근방의 모지점으로 달려갔다.
오밤중이라 부모님의 따가운 눈총을 감수하고 한 입 물었는데... 
으아ㅠㅠ 떡볶이는 죽죽하고 비엔나 소시지는 다 터지고 거금 삼천원이나 주고 얹은 치즈에서는 고무냄새가 나고...
정말 별로였다ㅠㅠ 그 지점에서 매운맛을 50%, 70%, 100%로 조절할 수 있다고 해서 50%로 사왔는데... 그래서였을까 맛이...?!

실망스럽기가 서울역에 그지없는지라 다시는 먹을 생각을 안하고 있었는데 먹고 실망한지 삼일도 안되어서 동생이 면목동 지점에 다시 도전해보자고 나를 꼬시는 것이 아닌가.
정말 기대안하고 도전해보았는데 먹는 순간 상투스가 뙇~
그냥 혀가 아리기만 할뿐 다른 것은 느껴지지 않는 맛이 아니라 정말 '맛있게' 매웠다.
매워서 눈물콧물 쏙 빼고 나중에는 목구멍까지 아릴 정도였는데도 계속 먹고싶어서 다음날 일어나자마자 쓰린 속을 부여잡고 남은 떡볶이를 데워 먹을 정도였으니 말이다.


그나저나 이것저것 다양한 생각의 조각들을 기록하기 위해서 블로그를 시작하였는데 먹는 것만 올리고 있으니;;
분발해서 다른 카테고리도 채워넣어야겠다.


카레홀릭: 전주 한옥마을 <상덕카레> 채식카레! 기호식품

원래 카레를 좋아하는 편이다.
우리나라 오X기 같은데서 나오는 노란카레는 안좋은 추억이... 있어서 따로 내가 첨가물(?)을 추가하는 것이 아니면 굳이 먹지는 않지만, '카레여왕'이 처음 나왔을 때 고구마, 토마토, 오징어를 넣어서 일본식으로 해먹었더니 참 맛있었던 기억이 난다.
일본식 카레도 좋아하고 인도카레도 좋아하는 편이다.
일본식 카레는 대학로에 쫙 깔린 어느 일본음식집을 들어가도 어느정도 평타는 쳐서 땡기는 것 없을 때 주로 먹는 편이다. 
아무 것도 안들어간 그냥 카레도 좋고 거기에 야채가 추가된 것도 좋고 위에 돈까스를 얹어먹는 것도 좋다.
인도 카레는 동대문 <에베레스트>에서 싸기도 하고 맛있어서 자주 가서 먹었는데,
대학로에도 <머노까머나>, <깔리>가 새로 생기고 <뉴델리>도 있어서 연구원에 다닐 때는 자금의 여유가 생길 때마다 나에게 주는 선물로 팔락파니르와 갈릭난 그리고 라씨를 시켜서 포식하곤 했다.

그러다 올 여름 친구와 전주로 당일치기 여행을 갔는데,
경기전 후문? 쪽문?에 있던 <상덕카레>에 가게 되었다.
여행의 컨셉 자체가 맛집탐방이었다.
올 한 해만 네 번째 온 전주였지만 사람이 너무 많아서 한 번도 가보지 못한 <외할머니 솜씨>에서 장장 그 더위에 한 시간을-_-;; 오픈하기를 기다려서 일빠로 먹고는 빙수와 단팥라떼로 부른 배를 하고는 바로 카레집으로 갔다.
매운맛과 순한맛 두 종류였는데 카레와 상덕빵(난 같기도 하고 공갈빵 같기도 한), 요거트(라씨 같았다) 세트가 육천원.
친구는 매운맛, 나는 순한맛으로 시키고선 가게 내부를 찬찬히 둘러보니 빈티지하고 귀여운 소품들이 가득했다.
계산대 위에는 슈크레 인형 두 마리??가 앉아있었는데 한옥마을을 둘러보니 슈크레마을인양 잡화점마다 슈크레를 팔았다ㅋ


밥은 일반 흰쌀밥이었고 카레의 색이 내가 별로 안좋아하는 오X기 색깔이랑 비슷해서 약간 두려움과 불안감에 사로 잡혔었다.
그런데 먹어보니 우왕ㅋ
일본카레맛도 인도카레맛도 아닌 것이 묘했다. 
첨엔 잉?하기도 했었는데 먹다보니 넘넘 부드럽고 맛있는 것이 아마 크림이나 우유같은 것이 추가된 듯 하였다.
매운맛도 한 입 먹어보았는데 나쁘지 않았던 것 같다.
야채도 많이 들어있고 후식으로 작은 찻잔같은데 나왔던 요거트도 라씨같아서 좋았다. 
라씨는 넘 양이 적어서 감질맛났지만ㅋ
부른 배를 하고는 몇 숟가락 남기고 거의 다 먹고 왔다.
영업시간이 굉장히 짧아서(아마 점심시간이었던 것으로 기억) 지난번에 왔을 때 먹어보지 못했는데, 이번 기회를 통해서 먹어볼 수 있어서 전주 맛집 한 군데를 더 클리어했다는 점에서 의의가 있었다.

전주에 다녀온지 벌써 이주나 되었는데 지금 글을 올리는 이유는...
이 비오고 태풍이 부는 와중에 먹고 싶어서다ㅠㅠ
전주를 비롯한 전라도 그리고 충청도 경기도 서울 일대가 모두 태풍때문에 난리가 났는데,
부디 다들 무사하길 간절히 바란다.

꿈의궁전 피콜로

<비너스의 짝사랑>이라는 순정만화가 있었다.
삼각관계로 그치지 않고 사각관계는 기본인 지금 생각하면 좀 막장드라마 같은 애정전선을 지닌 만화였는데 나는 그 만화를 너무 좋아했다. 
주인공들이 너무도 순수하게 자신의 꿈을 향해 달리고 있었으니깐.
그 모습이 부러웠다.

작가인 유키 나카지에 빠져서 전작인 <꿈의궁전 피콜로>를 구하려 이리저리 동분서주했으나 이미 절판되었고 인기작가도 아니라 구하기가 어려웠다. 
고등학교 때 겨우 중고로 구해서 읽었는데, 오래된 책이라서 그런지 오타도 많았고 페이지가 섞이기까지 한데다 주인공이 남자여서 선뜻 손이 가지 않았었다.
그러다가 뉴스와 다큐멘터리조차도 재밌다는 시험기간에 1권을 집어들었는데 '요리'라는 꿈을 향해 앞만 보고 달리는 등장인물들에게 순수한 감동과 자극을 받았었다.
고 2 때는 매 시험기간마다 공부하기 직전 <피콜로>를 보고 의지를 불태운 후 공부에 돌입했었던 기억이 새록새록^^
오죽하면 <꿈의궁전 피콜로>를 세 번 읽지 않은 친구에게는 내 만화책을 빌려주지 않겠다는 망언을 하기도 했었다.
그만큼 나에게는 너무도 소중하고, 2D로 존재하는 그들에게 지지 말아야겠다는 자극제 역할이 되어주기도 했다.

그래서 내 블로그 이름도, 닌텐도ds '동물의 숲'에서 내 마을의 이름도 모두 '피콜로'이다.

미래는 이미 시작되었다.
드넓은 꿈을 찾아서
떠나자.

레나 안데르손, <덕 시티 Duck City> 독서

 왕이나 귀족과 같은 몇몇 선택 받은 사람을 제외하고는, 지구 상의 대부분의 사람이 자신이 먹고 싶은 것을 마음대로 향유할 수 있게 된 것은 채 200년도 되지 않은 일이다. 근대 이전에는 많은 사람들이 항상 굶주림에 시달려야만 했고, 그 때문에 마음껏 먹어 두툼한 지방질을 몸 속에 축적하는 사람들이 선망의 대상이 되었다. 그러나 여전히 소수의 사람이 지구 인류 전체의 대부분의 부를 소유하고 있는 무시무시한 자본주의가 들어서면서, 이전에는 생각하지도 못했던 다양한 상품을 생산해내며 사람들의 소비를 끊임없이 유도해야만 했던 자본가들은 거대한 공장의 고철을 돌아가게 하기 위하여 노동자들의 배를 부르게 해야만 했다. 명석한 자본가들은 단순히 그들의 배를 채우는 것뿐만 아니라 그들의 입을 현혹할 만한 맛있는 음식을 생산하여 그들에게 중독과도 같은 끊임없는 소비를 하게끔 하였다. 싼 가격에 세계 어느 곳에서도 빠르게 먹을 수 있는 햄버거, 콜라와 같은 그러한 음식들. 이 무시무시한 지방 덩어리들은 어느새 그들의 몸을 가득 채워갔다. 이와는 대비되어 자본가들은 몸에 좋지 않은 이러한 지방 덩어리의 섭취를 거부하고 건강에 좋은 음식을 먹고 또 적당량의 운동을 하며 자신의 몸매를 보기 좋게 날씬하게 형성하였다.


즉, 근대 이전의 선망의 대상이었던 두툼한 지방질의 몸매는 오늘 날에는 혐오와 경멸의 대상이 된 것이다. 따라서 사람들은 혐오스러운 지방의 제거를 위하여 끊임없이 절식과 운동을 감행해가며 ‘스키니skinny’한 몸매를 만들기 위해서 애쓰고 있다.


이 작품에서는 그러한 사회상에 대하여 통렬하게 꼬집고 있는 것이다.


누구나 살고 싶어하는 이상향의 도시, 덕 시티. 설탕 덩어리의 끊임없는 소비를 강요하는 와중에도 초고도 비만자를 경멸하며 그들을 날씬하게 만들기 위한 정부의 개입이 계속되는, 모순되는 사회이다. ‘자유’를 최우선의 가치로 내걸었던 덕 시티의 식생활에는 이미 거대 자본가 존의 공장에서 생산된 지방 덩어리들로 점령되었고 그 와중에 정부는 ‘흰 고래’, 즉 지방을 제거하기 위한 작전인 ‘에이햅’을 강요한다. 게다가 이 와중에 초고도 비만자들을 대상으로 한 미스터리한 연쇄살인이 벌어지는 등, 뚱뚱한 사람들이 더 이상 살 수 없는 세상이 되어버렸다.


200킬로가 넘는 초고도 비만자들은 끊임없이 흰 고래를 제거하기 위한 강요와 함께 JvA의 달콤한 설탕 덩어리의 유혹, 그리고 언제 자신을 살해할지 모르는 연쇄살인에 대한 공포 속에 살고 있다. 그러나 체지방이 모든 업적에 대한 기준이 되는 사회에서, 정부에서는 뚱뚱한 사람들에게는 사람답게 살 수 있는 기회를 모두 박탈하여 그들의 체지방을 최대한 0%에 수렴하게 하도록 유도한다. 이러한 정책은 오히려 사람들로 하여금 적게 먹어야 한다는 강박관념을 강요하여 그들을 거식증으로 몰고 간다.


요사이에 시내에 나가보면 대부분의 여성들이 젓가락 같은 팔다리를 가지고 있는 것을 볼 수 있다. 흔히들 이야기 하는 ‘보통체중’의 소유자는 다른 사람의 눈에는 그저 잘 봐줘봤자 ‘통통’, 아니면 ‘뚱뚱’하다고 한다. 티비에 나오는 연예인들의 몸매가 점점 가늘어지며 일반인도 그것을 따라 한다. 뚱뚱한 사람은 자기관리가 부족한 것이라 당당히 말하는 이 사회에서 ‘다이어트’는 이미 하나의 강박관념이 된 지 오래이다. 비쩍 마른 몸매를 유지하기 위하여 먹는 양을 극도로 줄여 거식증에 걸려 죽는 모델에 대한 기사도 심심치 않게 등장하여 사회에 큰 충격을 주고 있다.


글을 쓸 때에는 작가 자신이 살고 있는 시대에 대한 문제의식이 반영되기 마련이다. 하지만 자신이 살고 있는 현재를 냉철한 눈으로 바라보고, 또 그를 적확하게 글로 표현하는 것은 무척이나 어려운 일이다. 하지만 스웨덴 출신의 작가 레나 안데르손은 냉철한 눈으로 오늘 날의 실태를 파악하여 너무나 상징적이며 또 현실적으로 작품 속에 잘 녹여내었다. 게다가 허먼 멜빌의 <모비딕>의 이미지를 차용하고 조지 오웰의 <1984>와 같은 디스토피아적 형식을 반영하는 것과 같은 현대와 고전의 접점을 탁월하게 유지해가며 작품을 이끌어가는 능력에 대해서 나는 감탄을 금치 못하였다. 작품 속의 ‘덕duck’, 하얀 오리와 흰 고래, 설탕과 같은 ‘하얀’ 이미지가 지방질을 떠오르게 하며 이 작품을 상징적이며 비유적으로 느껴지게 하는 요소가 된다.


-“인식이 전부야, 해들리. 실재는 아무 것도 아니라고.”라 말하는 존의 말에서, 자본주의의 시대를 살고 있는 우리들의 뇌리를 지배하는 명제에 대해서 다시 한 번 생각해볼 수 있었다. 자본가들은 ‘인식’을 통하여 소비자들을 공략하고, 소비자들은 그 ‘인식’에 따른 소비를 통하여 자신을 표현하는 것이다. 무섭도록 현실을 잘 짚어낸 대목이다.


막내를 군대에 보내고 일상

나랑 세살 차이이고 학년으로는 4학년 차이나는 막내남동생이 화요일에 입대를 했다.

동생은 태어났을 때 폐가 다 자라지 못하여 바로 인큐베이터에 들어갔다.
제왕절개로 우리를 출산하신 엄마는 한동안 회복을 위해서 병원에 계셨어야 했다.
나와 여동생은 큰집에 맡겨져있었는데 갓 두 살밖에 되지 않은 그 어린것이 어찌나 고집이 쎄고 말을 안 듣는지 우리 큰엄마는 여동생을 집에 두고서 나만 데리고 목욕탕에 갔었던 기억이 어렴풋이 난다.

막내가 처음 우리 집에 왔을 때의 기억도 난다.
인큐베이터에 있다가 와서 그런지 누워서 처음 끌어안고 머리를 만지니 꽁지머리가 나있었다.
그래도 막내라고 가끔씩은 집에서 100발자국도 안되는 거리인 엄마 식당까지 업어주고, 막내는 내가 '특별히' 아끼는 동생이라고 대놓고 얘기해서 둘째동생에게 상처도 주고...
혹여나 친구도 없이 왕따 당할까봐 둘째동생과 머리 맞대고 걱정하기도 했었다
셋이 다 같은 초등학교에 다닐 때는 등교할 때 셋이서 함께 가곤 했었는데, 혹시나 학교에 불이 났을 때 동생들이 밖으로 안나가고 나를 찾아오다가 다칠까봐 걱정해서 그런 경우에는 나를 찾아오지 말고 꼭 정문밖으로 나가서 셋이 만나자고 하기도 했었다.

'우리 아들 이제 군대 며칠 안남았네'하는 엄마에게 입대하는 날 울지말라고 단단히 주의를 줬는데 내가 눈물이 날 줄은 몰랐다.
입대하기 전 자장면을 먹으면서 한 마디도 안하는 동생에게 나도 할 말이 없어서 조용히 먹기만 했다.
그러다 자장면집에서 몰래 찍은 동생 사진을 다시 보니 눈시울이 붉었기에 말을 안한게 아니고 못한 것이라는걸 알게 되었다.
훈련소에서 집합하는 길에 뒤도 안돌아보고 바로 들어가는 놈한테 야박한 놈이라고 욕을 했지만, 마지막 들어가는 길에 아빠와 나를 찾아 두리번거리던 모습도 눈에 밟힌다.
매일 집에 있던 동생이 이제 집에 없다는게 잘 실감이 나지 않는다.
엄마는 동생빨래를 개다가 우셨다는데, 나는 마트에 갔다가 동생이 좋아하던 과자를 보고 이젠 사다줘도 먹을 사람이 없다는 사실에 잠시 울컥했다.
며칠전 하품하다가 눈물이 눈에 맺힌 것을 보고 둘째가 막내때문에 우는줄 오해하고 '브라더 컴플렉스'라고 놀렸더랬다.
아니라고 발끈했는데 지금 다시 생각해보니 맞는 것 같다.

부디 건강하고 많이 성장해서 돌아오길 간절히 바라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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